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워싱턴 광역 경찰국 (문단 편집) == 역사 == [[남북전쟁]]이 발발하자 [[워싱턴 DC]]는 전쟁 때문에 모인 [[미합중국 육군|군인]], [[공무원]], [[피난민]]들로 [[개판]]이 되었다. 소요와 [[범죄]]가 급증하고 이 틈을 타 [[아메리카 연합국]]에서 보낸 [[간첩]]들도 기승을 부렸는데, [[https://mpdc.dc.gov/node/226472|기존의 워싱턴 DC 경찰이었던 Auxiliary Guard는 총원이 '''16명'''에 불과했기 때문에]] 도심의 통제력을 거의 잃은 상태였다. 이 모든 걸 DC에 살면서 직접 겪었기에 누구보다 빡친 [[에이브러햄 링컨]] [[미국 대통령]]은 수도의 경찰 체계를 직접 정비하기로 했고, 수도경찰위원회를 설립한 후 당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뉴욕 경찰국|NYPD]][* 워싱턴보다 16년 빠른 1845년 창설. 이쪽은 [[MPS]]를 모방해 세워졌다.--MPS는 정말 안 끼는 데가 없다-- 항목에도 나오지만 세계의 현대적인 경찰 제도의 기초를 세운 곳이다.]에 위원들을 파견해 선진적인 경찰 운영을 체득하게 하였다. [[난장판]]이 된 도시 때문에 마찬가지로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던 연방의회도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 1861년 8월 6일 드디어 수도경찰청이 탄생했다. 출범 당시 인원은 경찰청장 1명에 경사(sergeant) 10명, 150명 이하의 순경(Officer) 정도였으며 관할구역은 10곳이었다. 경찰관들은 --당연하지만--미국 [[시민]]이며 [[영어]]가 가능하고, DC에 2년 이상 거주했으며 전과가 없는 25 ~ 45세의 남성 중 신장 167cm 이상인 자를 선발했다. 2교대로 12시간씩 주 7일 근무를 했으며 [[휴가]] 같은 건 없었고 [[미국의 법 집행|미국 경찰]]의 상징인 배지는커녕 어떠한 장구류도 주어지지 않아서 경찰관들은 자비로 총을 구매하거나 집에 있는 [[총기]]를 들고 와서 근무를 서야 했던, 열악한 환경이었다. 전쟁 중이었으니 어쩔 수 없었다. 1864년에는 [[연방보안관]]과 [[미합중국 육군|전쟁부]] [[장관]]의 권유로 대통령 경호 임무도 맡게 되었는데, 총 4명의 경찰관이 2명씩 조를 짜 주야간 근무를 섰다고 한다. 그러나 링컨 본인은 경호원들에 둘러싸여 다니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에 경호원들은 늘 총을 숨기고 사복을 입어야 했다. 대중에 친근감을 주려고 내린 결정이겠지만, 결과적으로는 경찰이 경호를 강화하지 못해 자신의 암살을 도와주는 꼴이 되었다. 시정부와 연방정부의 지속적인 지원과 남북전쟁이 끝나고 여유가 생기면서 MPDC는 무서운 속도로 성장했다. 최초의 [[여경]]은 1918년에 선발되었으며 수도경찰청은 이 3명으로 여성청소년국을 조직해 여성과 [[미성년자]]가 연루된 [[범죄]]에 대응했다. 1919년에는 훈련부서가 설립되어 체계적인 신임경찰관 교육이 가능해졌다. 기수당 22명의 교육생에게 1달간 경찰관 직무집행과 수사, 형사절차를 가르쳤는데 이는 1930년의 경찰학교 정식 창설로 이어졌으며 이때부턴 교육기간이 더 길어지고 교육의 질도 높아졌다. 이후에도 MPDC는 [[세계대전]]을 비롯해 미국을 강타한 20세기의 수많은 굴곡을 고스란히 겪으며 지금의 수도경찰청이 되었다. [[9.11 테러]]가 발생했을 때 [[뉴욕]]에 지원경력을 파견한 걸 보면 여력이 있으면 주변 도시도 도와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